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유령 전투 (문단 편집) == 결과 == 장계 한장 없이 어디서 뭘 하는지 알 길이 없는 부원수를 두고 김명원은 여태껏 많은 장수들이 그랬듯 적전도주한 것으로 판단하여 조정에 이양원을 따른다는 핑계로 도망갔다고 보고했다. 이 보고를 받은 [[비변사]]는 우의정 유홍이 주도하여 신각의 참형을 건의했고, [[선조(조선)|선조]]는 허락한다. 신각이 어디 군수나 병사도 아니고 부원수라는 걸 감안하면 성급한 감이 없잖은 결정이었는데 개전 직후 온건한 성향인 류성룡이 탄핵당하고 강경파 신료들이 득세한 영향으로 보인다. 그런데 신각을 참하라는 명을 받은 선전관이 떠난 후 승전보가 도착했다. 조정에서는 급히 사람을 보내 사형 집행을 멈추려 했지만 도착했을 땐 이미 신각의 목이 떨어진 다음이었다. 억울하게 죽은데다 90살 노모까지 봉양하고 있어 신각의 죽음을 들은 사람치고 원통하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본디 유순한 성격으로 남을 모함하거나 해코지하는 일이 없었던 김명원은 고의는 아니었다지만 멀쩡한 장군을 죽게 만든 것에 책임을 느꼈는지 정유년 선조가 작정하고 이순신을 쳐내려 했을 때는 끝까지 동조하지 않았고 이순신의 구명과 재기용에 힘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